이재명, 논란의 아웃사이더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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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게빈 버틀러, 구유나
- 기자, BBC News
2024년 12월 3일 이전까지만 해도,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의 대권 가도는 장애물로 가득했다.
진행 중인 재판과 비리 관련 수사, 권력 남용 혐의 등이 이재명의 두 번째 대권 도전을 좌절시킬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한밤의 헌정 위기 사태가 모든 것을 바꿨다.
그날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시도가 무산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21대 조기 대선에 출마한 이재명은 4일 새벽 당선을 확정지었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당시만 해도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던 61세의 이 후보에게는 극적인 운명의 반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법 리스크는 대통령 당선인이 된 이재명에게 여전히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그가 오랜 도전 끝에 거머쥔 대권을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이재명의 정치 인생 내내 그를 괴롭혀온 여러 논란 중 일부일 뿐이다.
아웃사이더
가난을 딛고 일어나 유력 정치인이 되기까지, 굴곡 많은 삶과 강경한 정치 스타일이 결합하면서 이재명을 둘러싼 여론은 극명하게 갈려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은) 삶의 궤적에 굴곡이 좀 많기 때문에 논쟁적인 사건들을 많이 겪었고, 스스로 논쟁을 만드는 행위들도 해왔다"라고 설명했다.
20대 대선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겠다는 급진적인 공약과 같이 진보적 개혁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이 교수는 "이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하고, 또 반대로 그를 싫어하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굉장히 논쟁적이고 특이하며, 굉장히 아웃사이더고 비민주당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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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한 자서전에서 이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참혹했다"라고 묘사했다. 1963년 경북 안동 산골 마을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건너뛰고 불법으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중 손가락이 공장 동력 벨트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13살에는 프레스 기계에 손목이 끼어 팔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이후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응시해 1978년과 1980년에 각각 합격했다. 이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법학을 공부했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2년 부인 김혜경 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2005년 당시 여당이자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사회자유주의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거의 20년 동안 인권 변호사로 일했다.
불우한 성장 환경으로 인해 상류층으로부터 무시당하기도 했지만, 밑바닥부터 정치 경력을 쌓아 올린 이재명은 노동계급 유권자와 정치 엘리트에게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2010년 성남 시장에 당선된 이재명은 재임 기간 동안 일련의 무상 복지 정책을 펼쳤고, 2018년에는 경기도지사가 됐다.
이재명은 도지사 시절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이 과정에서 모든 도민에게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중앙정부와 충돌하기도 했다.
이 지사가 2021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의 최종 대선 후보에 처음으로 오른 것도 이때였다. 당시 그는 0.76%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2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교수는 그때부터 이 씨가 논쟁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을 버리고, 대신 더 안전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정치 생활을 해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그가 "도지사 임기 이후에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목적 때문인지 개혁성이나 실행력이 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라면서도 "하지만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문제나 복지 문제, 부정부패 문제 등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타협적인 언행들을 보임으로써 아주 강력한 지지 세력을 형성했다"라고 평가했다.
이 씨의 비타협적인 태도와 관련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데, 특히 보수당인 국민의힘 측 많은 의원과 지지자들은 그가 너무 공격적이고 거칠게 접근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그의 정치 경력은 2004년 음주운전 사건, 2010년대 후반 알려진 친인척과의 분쟁, 2018년 불거진 외도 의혹 등 일련의 추문으로 인해 흠집이 났다.
해외에서는 유권자들이 논란이 있는 정치인을 용서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지만, 공인에 대한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스캔들이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스캔들의 무게
최근 몇 년 동안 이재명의 정치적 야망은 진행 중인 판결을 비롯해 더욱 긴급한 논란에 휩싸여 왔으며, 이는 당선 이후에도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위협이 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2023년 검찰이 기소한 도시개발 프로젝트와 관련된 배임, 부패방지법·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 일련의 혐의에 관한 것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법적 분쟁은 지난 20대 대선 토론에서 당시 후보였던 이 씨가 고의로 허위 진술을 했다는 혐의와 관련된 것이다.
2021년 12월 한국에서 방영된 TV 토론회에서 이재명은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핵심 인물인 김문기 씨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검찰은 이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고, 2024년 11월 이 씨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3월 항소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한국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뒤집었다. 이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 시점에도 사건은 여전히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당선인의 정치적 야망을 막아서는 어떤 위협은 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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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부산의 한 공항 건설 현장 밖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이 전 대표는 사인을 요청하며 다가온 한 남성의 칼에 목을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이 씨는 목 부위 경정맥을 다쳐 큰 수술이 필요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겪은 그는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유리 뒤에서 방탄가방을 든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선거운동을 해왔다.
가해자는 이 씨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심화하는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공적으로는 20대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과 윤석열 간의 격렬한 경쟁으로, 사적으로는 점점 더 극단적인 성향을 띄는 온라인 담론으로 나타났다.
이 씨가 습격당하기 불과 몇 주 전인 2023년 12월, 한겨레신문이 후원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 이상이 한국의 정치적 분열이 악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 씨가 민주당 대표로서 윤 전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을 수시로 막음으로써 사실상 레임덕 대통령을 만드는 등 문제를 심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당의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 시도와 예산안 거부 등 여러 방해로 인해 윤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욱 악화했다는 것이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자 계엄령을 선포하는 극단적인 조처를 했다.
위기 속 기회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에 따르면 '반국가 세력'과 북한 동조자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선포된 계엄령은 이재명이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계엄령 선포 몇 시간 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당선인은 국회로 이동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황을 생중계하며 국민에게 국회로 모여달라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수천 명의 시민들이 국회에 모여 경찰과 충돌하고 군부대를 막아서는 동안 야당 의원들은 계엄령을 막기 위해 담장과 벽을 필사적으로 담장과 벽을 뛰어넘었다.
이 당선인도 그중 한 명으로, 담을 넘어 국회에 진입해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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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결정했고,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4일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이후 이 씨는 4월 9일 민주당 대표직 사퇴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이어 27일 치러진 민주당 대선 예비 경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본선 후보로 선출됐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시도로 인해 한국은 여전히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다. 대통령은 직에서 물러났고, 그의 소속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처럼 혼란 속에서 기회를 거머쥔 사람들도 있다.
그는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이 씨의 선고를 대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가 당선 후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수개월간의 정치적 혼란을 견뎌낸 한국이 아직 정치 권력을 둘러싼 드라마를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