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법원, '트럼프 관세, 판결 때까지 유지 가능'

동영상 설명, 백악관 측은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건 연방 국제무역법원의 판결 이후 "우리는 이 법적 투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 기자, 나탈리 셔먼
  • 기자, BBC News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 대부분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발표된 지 하루만인 29일(현지시간), 미 연방 항소법원이 항소심 심리 기간 계속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방 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제출한 판결 효력정지 요청을 받아들여 해당 판결의 집행을 일시 중단한다고 결정했다.

하루 전인 지난 28일, 1심 재판부인 미국 연방 국제무역법원(CIT)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 같은 판결에 트럼프 행정부는 분노를 표하며 이를 사법부의 권한 남용 사례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현재 미국 내 소규모 기업 및 일부 주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이자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 놓은 관세 정책에 맞서 소송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항소장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하루 전 CIT가 내린 판결이 대통령의 판단을 부당하게 추측했으며, 이로 인해 수개월에 걸쳐 힘들게 이룬 무역 협상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외교 정책과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주체는 사법부가 아닌 정치 부문"이라는 주장이다.

29일 항소법원이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판결 집행 중지 결정을 내리기 직전, 캐롤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든 다른 어떤 대통령이든 행동주의 판사들에 의해 민감한 외교나 무역 협상이 방해받으면 미국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SNS 게시물을 통해 "대법원이 이 나라를 위협하는 이 끔찍한 판결을 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뒤집어주길 바란다!"면서 CIT의 판결을 강하게 비난했다.

동영상 설명,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고문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강조했다

미 연방 무역법원 CIT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멕시코, 캐나다가 미국으로의 마약 및 불법 이민자 유입 단속에 소극적이라며 이들 3개국에 별도로 부과한 관세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상품에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힌 10% 기본 관세는 물론 유럽연합(EU)이나 중국 등 수십 개 국가와 지역에 별도로 부과한 일명 상호 관세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고자 근거로 삼은 1977년 인용한 '국제 비상 경제 권한법(IEEPA)'은 대통령에게 이렇듯 광범위한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다만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 특정 상품에 부과된 관세의 경우 근거로 한 법률이 다르기에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관세 발표 이후 무역 협상이 이어지면서 백악관은 현재 다수의 관세를 일부 유예하거나 수정한 상태다.

그러나 항소법원의 이번 결정에 따라 해당 사건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관세는 계속 부과되게 되었다. 다음 심리일은 6월 5일이다.

한편 29일 또 다른 연방 법원도 별도의 관세 소송에서 CIT와 유사한 판단을 내렸다.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의 루돌프 콘트레라스 판사는 관세 부과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판결은 원고인 장난감 업체에만 적용된다.

동영상 설명, 트럼프 대통령은 대대적인 관세 발표 이후 잦은 입장 번복을 두고 생겨난 신조어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난다'는 뜻)'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상황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고문은 29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법원에서) 패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의 국가 안보 우려를 근거로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 어떤 법원에서도 제동을 건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조항을 바탕으로 앞으로 반도체, 목재 등 다른 산업 분야에 대한 관세를 인상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과거 1기 행정부 시절 중국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고자 활용한 1974년 '통상법' 제301조를 다시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아울러 수십 년간 인용되지는 않았으나, 미국을 "차별하는" 국가의 상품에는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1930년 제정된 '통상법' 제338조도 존재한다.

하지만 백악관은 현재 이번 CIT의 판결을 무효화하는 데 더욱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이 사안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권력 장악'

1심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을 도운 변호사 일리야 소민은 이번 판결이 최종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을 내린 CIT 재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 한 명을 포함해 민주당과 공화당 대통령이 각각 임명한 판사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 이후 사상 최대의 무역 전쟁을 시작하며 이처럼 엄청난 권력 장악을 시도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 자문 기관 '판게아 정책'의 테리 헤인스 창립자는 "(향후) 법원이 대통령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편 기업들은 희망을 내비치면서도 여전히 상황이 해결되었다는 느낌은 아니라고 토로했다.

중국에서 제조해 미국에 판매하는 보스턴 소재 장난감 회사 '스토리 타임 토이즈'의 소유주 카라 다이어는 "(1심 결과에) 매우 기쁘고 안도했지만, 여전히 매우 신중한 입장"이라고 했다.

"지금은 사업 계획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다이어는 "사법 시스템을 통해 이번 문제가 해결되어 기업들이 앞으로 관세에 대해 조금 더 확실성을 가질 수 있길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호주 대표로 무역 협상을 진행한 바 있던 드미트리 그로주빈스키는 이번 법정 공방으로 인해 관세를 외국과의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능력도 약화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관세를 인상하기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이번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을 큰 몽둥이로 위협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 그 몽둥이는 훨씬 실체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추가 보도: BBC 월드 비즈니스 리포트, 오프닝 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