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선거: 국민당, ‘중국과의 평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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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테사 웡
- 기자, BBC News, 대만 타오위안 시
록 음악이 고막을 울리고 무대 위 댄서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가운데 군중들이 대만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대만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 후보의 선거 유세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이었다
사회자가 “(차기) 총통을 소개한다”고 소리치자 관중들은 ‘허 우유이!”라며 포효했다.
허우유이 총통 후보 옆으로 러닝메이트인 자오사오캉 부총통 후보가 우선 마이크를 잡더니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을 향한 독설을 쏟아냈다.
그는 손가락을 흔들며 “저들은 어떤 길로 가고 있나! 전쟁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소리쳤다.
“저들은 대만을 위험으로 이끄는 길이자 불확실성으로 이끄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는 13일로 예정된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당은 유권자들에게 현재 평화 혹은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선택의 길에 놓였다고 설득하는 데 승부를 걸고 있다.
중국은 자치 섬인 이곳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대만 점령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 또한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 8년간 이어진 민진당 집권 기간, 중국은 대만 주변의 군사적 행동을 늘렸으며, 이른바 ‘회색지대’ 전략을 이어 왔다.
이런 가운데 민진당은 자신들 또한 대만의 발전 경로를 유지하면서도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민진당 선거 광고에선 이번에 물러나는 차이잉원 현 총통이 라이칭더 총통 후보를 옆에 태우고 차분히 조용한 시골길을 운전하는 모습을 담았다.
차이 총통이 운전석에서 내리고 라이 후보가 러닝메이트인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는다. 이에 차이 총통이 “나보다 운전 잘하세요”라며 이들에게 당부한다.
하지만 과연 라이 후보가 현 총통의 당부를 지킬 수 있는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열성 국민당 지지자들이 밀집한 대만 북서부 타오위안 지역에서 열린 국민당 선거 집회에서 BBC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경제와 생활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 또한 무시 못 할 요소인 듯했다.
서비스직 종사자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는 시(45)는 “이전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그런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무섭다. 민진당은 너무 공격적이기에 국민당을 선택해 평화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당 지지자인 투(58)는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중국 당국이 자국민들을 어떻게 챙기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 중국의 고속철도, 기반 시설 등을 봐라. 중국은 정말 발달한 국가로 이들의 휴대전화도 심지어 (우리보다) 낫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국민당 당원이라 밝힌 리는 “(대만과 중국이) 통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더 많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이상을 공유하며, 중국과는 같은 민족”이라고 했다.
어려운 균형 잡기
수십 년 전, 국민당은 내전 중 중국 공산당에 맞서 싸우다 패배하고 이곳 대만 섬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제 국민당은 중국과의 더 온건한 관계를 선호하고 있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과 점점 더 긴밀하게 얽히고 있는 대만의 경제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대만 수출품의 최대 시장으로, 대만 경제의 중요한 생명줄이 됐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타이샹’, 즉 생계를 위해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하는 대만인 중 다수는 국민당의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다.
한편 상징색이 푸른색인 국민당 내에서도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짙푸른색’ 파벌은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자랑한다.
이들 중 다수가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대가 장악했던 그해 중국 본토에서 도망친 소위 1949 세대의 후손이다. 이들은 여전히 중국 본토에 대한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느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국민당은 당 내부적으로 점점 더 균형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당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지만, 점점 더 중국 본토와 자신들을 거리 두길 원하는 유권자들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수십 년간 집권했으나, 최근 몇 년간 선거에서 민진당에 패하며 자리를 내줬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인 대부분은 자신들이 대만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독립도 선언하지 않고, 그렇다고 본토와 통합도 원치 않는, 그야말로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이에 국민당은 “친중”이 아닌, 중국과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겠다는 식으로 주장을 중화해야만 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직 경찰 출신으로 ‘연푸른색’ 온건한 색채를 띤 허우유이를 총통 후보로 내세우게 됐다. 게다가 그는 국민당과 함께 온 ‘외성인’이 아닌 대만 현지의 소위 ‘본성인’ 출신이다.
최근 허우 후보는 “대만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자유를 영원히 수호할 것”이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만 통일에 대한 재확인 메시지에 답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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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통일을 주장해온 강성 ‘짙푸른색’ 언론인 출신의 자오 부총통 후보는 최근 들어선 중국과 대만의 사회 시스템은 “너무 다르다”면서 자신이 부총통이 돼도 중국과의 통일을 밀어붙이진 않겠다며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국민당엔 여전히 여러 위험 요소가 존재하는 모양새다.
우선 국민당이 선택한 언어는 중국 당국의 언어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일부 유권자들에겐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의 수장인 쑹타오 주임은 대만과 중국이 “전쟁과 평화, 번영과 쇠퇴 간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민진당에 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자국에 영향권을 행사하고자 이러한 식의 발언을 내놓고 있다고 주장할 구실을 마련해 줬다.
또한 중국 정부는 라이 후보를 “분리주의자”, “말썽꾼” 등으로 부르며 자신들이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분명히 보여줬다.
또 다른 위험 요소는 국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중국 당국을 달래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카네기 차이나’의 이안 총 비상주 연구원은 “국민당은 자신들이 중국으로부터 자제를 약속받고 이를 지키도록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홍콩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보면, 중국이 과연 무엇을 약속하고 지킬 의사가 있는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한다면 아마도 잠깐은 중국 당국이 잠잠해지겠죠.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국은 경제전 의존도 확대이든, 무력이나 협박을 통해서든 대만을 통제하고자 합니다.”
이는 국민당이 안고 있는 장기적인 문제와 이어진다. 세대가 변할수록 대만인들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원하는 바와 국민당이 전통적으로 지지해오던 가치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 연구원은 전쟁과 평화 담론은 “(국민)당이 당내 서로 다른 2가지 모습을 조화롭게 조정하고, 유권자들에게 일관된 주장을 제시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당이 정당으로서 나아가는 방향과 유권자들이 나아가는 방향 간엔 자연스러운 긴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총 연구원은 국민당의 공식 영문 명칭인 ‘Chinese Nationalist Party’를 언급하며 “결국 국민당은 어떤 당이 되고 싶은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중국 민족주의 정당(Chinese Nationalist Party)’이 되고 싶은가”라고 덧붙였다.
“아니면 기꺼이 대만 민족주의 정당이 되고 싶을까요?”